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의사한테 사과 받고 싶었던 경험.

의사가 실수했을 때는 환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합시다. by 늑대별님

윗 글을 보고 나니 옛날 일이 생각난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는 2005년 임신 23주에 양막이 파열돼서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데, 그 때는 충청도에 살아서 대전의 모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처음엔 원인 모를 출혈 때문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입원 중 갑자기 양수가 터진 것 같아서 호출을 했었다.
입원을 오래 한 내 짐작으로 치프 레지던트로 추측되는 분이 양수 시약 검사를 하고 초음파를 봤었는데.. 검사에서는 양수가 아닌 걸로 나오고 태아도 심장 잘 뛰고 있다고 괜찮다고 했었다. 나는 시트까지 흥건하게 젖어서 놀랐었는데 일단 괜찮다니 정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이상해서....시트까지 흥건히 젖어도 양수가 아닐 수 있냐고 물으니까, 임신 중에 원래 분비물이 많을 수가 있는 거라고 해서 안심하고 병실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부터 무려 7시간 이상 진통과 고열에 시달렸다. (그땐 그게 진통인 줄도 몰랐으니...)
이제와서 추측하건대 양수 파열로 인한 감염이 정말 심한 상태에서 아무 조치 없이 태어나서 최고의 고열을 만났던 것이다. 무려 7시간 이상....(지난 일 더 왈가왈부해서 뭐하겠느냐만 아마 그 훨씬 전부터 양수가 조금씩 새고 있었던 걸로 추측한다. 의사들이 못 잡았을 뿐.)

정말 아파서 죽는다는 기분이 그런 거였다. 곧 아이를 만나기 위해 각오하고 만나는 진통이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간호사들도 그냥 열이 나는 거라 자기네들은 모르겠다고만 하고...내가 너무 힘들어서 못 참겠다고 하니까 해열제 던져주고 가고...-_-

담당교수님께서 외래 다 보시고 저녁에 호출하셔서 내려갔는데...이제는 나 같은 비전문가도 알다시피 초음파만 제대로 봐도 양수량은 그냥 나오는 거다. 담당 교수님 왈.."양수가 거의 없는데요...양수가 터진 게 맞았네요.."

솔직히 그 때 그 그 레지던트가 정말 미웠다. 어차피 일찍 양수 샌 걸 알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건 나도 인정하는 바인데....적어도 미리 알기만 했으면 제가 혼자 병실에서 그 고생은 안 했을테니까 말이다. 자기가 실수한 게 명백히 맞는데 옆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니...상황도 상황이고 정말 신경질이 나더라. -_-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교수님한테 엄청 혼났을 듯. -_-)

그냥 자기가 잘못했다는 거 인정하고, 입원 중에 얼굴도 자주 보고 초음파도 자주 봤던 입장에서 인간적인 사과 한마디라도 했으면 정나미가 떨어지진 않았을텐데...그냥 옆에서 가만히 있고, 그 이후엔 자주 보던 얼굴도 볼 수가 없더라.
다행히 주치의 교수님은 워낙 인간적으로 좋으신 분이라 날 잘 다독여 주셔서 마음은 그냥 풀었는데....어쨌든 그 병원에 더 이상 있기 싫어서 바로 앰뷸런스 타고 서울로 도망(?!)갔던 경험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날 이후부터 병원 갈 때마다 지방 병원을 잘 못 믿고, 처음 가는 병원에서 주치의를 고를 때는 선생님 출신 학교와 경력을 따져보는 속물스러움이 생겼다는 후문이...-_-

그 때 14주부터 원인 모를 출혈이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당시 다니던 로컬 병원 선생님도 4번이나 출혈 때문에 병원 갔지만 괜찮다고만 했지 아무 조치가 없었다. 간호사들도 출혈 때문에 병원 왔다는데 그냥 순서대로 기다리라고 해서 한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 다반사였고...(그 병원도 나름 대전에서는 잘 나가는 병원이었다.)

내가 지금 다니는 산부인과는 '출혈 때문에 오신 환자가 무조건 1순위이기 때문에 예약해도 밀릴 수 있다'고 문 앞에 써놓았더라. 그 안내문을 보니 수준이 정말 다르긴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그 때 결국 몇 주동안 출혈이 지속되는 데 결국 못 참고 내가 알아서 대학병원 외래로 갔던 거다. 진작에 응급실 가야 마땅한 상황이었건만..물론 대학병원에서는 당연히 바로 입원.
(참고로 그 로컬 선생님도 지방 모대학 출신이었다. 지방대 출신 의사 선생님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다는 부연으로 이해해 주시길...)

뭐랄까....나도 겪어보니까..의사가 '원인'이 되어서 큰 사고가 나는 게 아니더라도, 분명 의사도 실수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나 같은 케이스는 의사한테 전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도 당사자 입장에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환자 입장에서 야박하게 따질 수도 없을텐데....그때 그 레지던트는 예의상이라도 사과는 할 수 있지 않았나....싶은 생각이 든다.
뭐 그래봤자 지난 일이라 이제는 상관도 없다만...그 당시에는 좀 많이 야속했었다.

어쨌든 민서를 비롯해서 둥실이도 아무 탈 없이 잘 크고 있어서 정말 다행일 뿐이다.
위 포스팅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주저리 했다.
궁극적으로는 평생 의사한테 사과 받을 일 없이 사는 게 제일 복 받은 인생이리라.


Lin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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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걸 | 2009/01/04 09:28 | 횡설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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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Flower Island at 2009/02/10 22:28

제목 :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난리를 치는 사람과 만났..
의사한테 사과 받고 싶었던 경험. - by.아트걸님.읽다보니 나도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트랙백. 의사에게서 사과받고 싶었던 경험이 나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면... 06년도 1월즈음이었다. 06년이 시작된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1월 초순의 일. 글을 쓰다보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슬슬 열이 받는 부작용이 생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일은,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다.나도 잘못한 것은 있다고 인정은 하는데... 그래도 ......more

Commented by 정아 at 2009/01/04 09:52
아고..맘고생 정말 많이 했겠다. . 둘째 아이도 태어날때까지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병원의사님들은.. 안그런 의사님들이 진짜 훨씬훨씬 많겠지만.. 남들 이목, 부모님의 성화, 돈..등등때문에 의사되려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진짜 직업의식 투철한 의사님들까지도 싸그리 묶여서 욕먹는게 .. 그 분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 안타깝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 엄마로써 병원과 응급실 출입을 종종 하다보니.. 진짜 귀싸대기 한대 올려주고 싶은 의사님들 너무 많은거 같음..

의료관련 스토리의 소설이나 드라마같은거 즐겨보는데... 얼핏 보기론... 의사가 분명 실수를 하였어도 환자에게 잘못했다는 소리를 하면 안된다고 하더라고.. 혹시 모를..나중에 의료소송같은... 그런거에 휘말리게 되었을때 환자에게 사과했다는 사실 하나로 잘못 인정되서 뭐.... 그런거...
아마 그래서 더 사과를 안했을지도....
여하튼.. 의사님들 정말 피곤하고 힘들겠지만 환자볼때 자기 가족, 지인이라고 생각하고 진료보면 그리 성의없진 않을텐데...^^;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1/04 10:21
실시간으로 내 블로그에 있었구려..^^
난 다행히 그때 이후 특별히 불만 가는 의사선생님을 만난 적은 없어. 액땜을 과하게 해서 그런가..;;
의료문제뿐만이 아니라 법정에서 싸우는 문제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더라구. 그러니 사과 받는 쪽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맞는 것 같아. 사과 받았았다고 꼬투리 잡아서 옳다구나 하니까 이런 풍조가 생긴 거겠지. 문제라는 게 어느 한쪽에서만 잘못해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Commented by 늑대별 at 2009/01/04 12:10
잘 읽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셨네요..판단을 잘 못해서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을 멀리 돌아서 진단되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판단의 오류를 범하고 워낙 사람에게 생기는 병의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지요. 사실 수학문제처럼 문제와 정답이 딱딱 공식에 맞으면 의료분쟁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겠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불가피한 상황이라도 분명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그 불가피성을 설명해야지 "난 할만큼 했다. 내 탓 아니다"라고 뻗대면 감정만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각설하고...아트걸님의 양수가 터진 것을 알아채지 못한 레지던트는 예상대로 무지하게 혼났을 겁니다. 그리고..어쩌면 사과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사과해야하는지 (교수님 옆이라 더더욱) 몰랐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아트걸님을 찾아뵙고 "그 때는 제가 판단착오를 일으켜서...죄송했습니다"란 말을 했더라면...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1/05 13:41
저는 그때 상황도 상황이라(사실 중기유산이 워낙 큰 일이니..) 그 실수 자체는 정말 지엽적인 문제이니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었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혼자 아펐던 게 억울하더라구요. ㅜㅜ 열도 정말 많이 올랐었는데 간호사들도 오더 받은 게 없으니 그냥 참으라고만 하고....결국 열이 너무 오르니까 해열제 주고....저는 아프긴 했는데 남편 걱정할까봐 볼일 다 보고 아예 늦게 오라고까지 했었고...
입원 중에 정말 자주 보던 분이었는데...그 이후로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걸로 보아 아마 일부러 피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봤자 이미 지난 일이죠 뭐...^^;
Commented by 아아망 at 2009/01/04 21:26
어허허... 그 대전에 있는 병원이 어디일까요 -_-)a

대전에서 결혼할지는 모르겠지만 대전에서 애낳기 무섭네요 ㄷㄷ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1/05 13:44
대전에 큰 병원이 둘 있잖아요. 둘 중에 산부인과가 더 좋다고 소문난 둔산에 있는 곳이었어요.
사실 대전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곳이라고 저도 알고 갔는데....레지던트의 실수는 제가 개인적으로 운이 안 좋았던 것이니....과학하시는 분께서 일반화하시지는 않을 거라 믿고요. ^^;
다만 저는 로컬 의원에서 '괜찮다'고 하는 말은 이제 못 믿어요. 차라리 좀 겁주는 선생님이 저한텐 맞더라구요.
이 포스팅의 대학병원보다도, 그전부터 문제가 있어서 여러번 찾아갔는데 별일 없다고 했던 로컬 선생님이 더 미운 것이 개인적인 심정이에요. -.-
Commented by rhaud at 2009/01/05 17:55
대전 둔산 산부인과가 미운, 블로그 구경만 하던 엄마입니다.
아버지가 의사이신지라 의사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운나쁘게(?) 실수(?)하는 케이스가 되면 참.. 할말이 없지요.
임신 및 출산 경험담을 쓰자면 소설같은 이야기가 되는지라 시작을 못하겠습니다. ㅠ.ㅠ

민서가 너무 예쁘고 (딸은 저의 로망이에요~!), 육아 원칙이 눈에 쏙쏙 들어와서 자주 들리고 있어요.
날자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둥실이 순산하시길 기원드려요.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1/05 21:48
반갑습니다. 답방 갔었는데 쌍둥이 키우시나봐요~ ^^
혹시 님께서도 그 산부인과에 뭔가 사연이 있으신가요? 그게 맞다면 정말 언제 소설을 함께 나눠보고 싶네요. ㅜㅜ
커밍아웃(?)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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