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놀이터 이야기

날씨가 따뜻해지고 나서는, 밤에도 놀이터에서 많이 논다.
잠이 없는 30개월 아기 민서를 데리고 놀아주기엔, 놀이터가 최고다.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발을 쿵쿵 굴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솔직히 아파트 주거문화는 아이나 엄마한테 너무 큰 재앙이라 생각...)

***
별똥별에 버금가는 도시생활(인천생활)의 낭만을 느꼈다.

밤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자기 민서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 비행기가 날아가요!!"라고 소리쳤다.
나는 속으로 '설마 웬 비행기..'라고 생각을 했지만, 웬만한 일에는 아이에게 맞장구부터 쳐주고 보는 습관으로 "응 그래~~"하고 대답했다. (어른의 못된 습관이랄까...-_-)

"저기 비행기가 날아가요~!!!"

어랏!! 민서 말대로 정말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고층아파트 단지의 시야 가림에도 불구하고, 불을 번쩍대며 날아가는 비행기가 보였다.
민서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표정이었고,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하늘에 별은 하나도 안 보였지만, 반짝이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었다. ^^

더 재밌었던 건, 그런 일이 있고 3분 후에, 또 다른 비행기가 등장한 것이다.
그 때는 내가 먼저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민서야! 저기 비행기가 날아간다!!"
민서도 기뻐하며 손가락을 가리키며 연거푸 "비행기예요!!"를 외쳤다.

때는 밤 10시 반....사람이 거의 없이 어두운 적막한 놀이터....
그래도, 충분히 낭만적이고, 함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삭막한 고층아파트 한복판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비행기의 불빛을 보고 엄마와 딸이 함께 웃음을 머금으며 즐거워했던 추억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
어느 아이나(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도-_-) 다 그렇듯이 민서도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나는 항상 잔소리를 한다. "민서야. 거꾸로 올라가면 다칠 수가 있어요. 민서 다치는 거 엄마는 싫어요."
그런데 애가 순순히 말을 듣나..-_- 사실 나도 거의 포기할 때가 대부분이고, 잔소리 수위도 그냥 '좋게 말하는' 수준이다.
정말 위험할 땐 행동으로 직접 안아올려서 막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말로만 하고 방치...

그런데 며칠 전에 정말로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남자아이의 발에 귀가 채여서 제법 다쳤다.
귓바퀴가 파랗게 멍이 들고 부풀어 오를 정도였다. 민서가 앙앙 울 정도면 제법 아픈 게 맞다.
남자아이의 엄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들을 혼내고 있었다.
"친구가 아래 있으면 내려오는 게 아니지!!"

그런데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잘못한 건 우리 딸이잖아. -_-

"민서야. 그것봐...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가면 이렇게 다칠 수 있다고 엄마가 말했었잖아. 많이 아프지?"
"네...앙앙...."
"그래...다음부터는 미끄럼틀에 거꾸로 올라가면 될까 안 될까?"
"안 돼요..엉엉...."

딸이 다쳤을 때 아픈 걸 어루만져 줄 생각은 안 하고, 그것마저도 잔소리의 기회로 삼은 게 미안하긴 하다.
하지만 상대방 아이의 엄마가 먼저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아이 엄마랑 얼굴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서로 민망한 상황이었다.

나중에도 계속 이야기는 했다. "민서 아까 귀 아팠지? 지금도 많이 아파?"
"아니 안 아파~" (엄청 부풀고 퍼런 데도 이렇게 말하다니...;;;)

얼굴 같은 데를 크게 다친 게 아니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이런 일이 있어야지 엄마말을 조금이라도 듣지. -_-
그 이후부터는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가는 습관이 조금 고쳐지긴 했다. (완전히는 아님...-_-)

그래도 거꾸로 올라가면서-_- "계단으로 올라가는 거예요?"라고 실실 웃으며 말하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
민서가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우리동네 그네는 인기 있는 시간엔 줄을 서서 타야 한다.
가끔가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 뒤에 아이들이 너댓명 줄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죽어도 양보 안 하고 5분이 넘도록 타는 걸 볼 때면...
"언니들~ 동생들이 기다리니까 이제 양보해야지~"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고 "우리가 먼저 왔어요~!!"라고 하며 계속 둘이서 번갈아가면서 독점하고 있는 걸 볼 때면....
그 아이들 부모들이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는지...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아이들이 나가서 사랑받길 원한다면, 가정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저런 아이들은 별로 사랑해 주고 싶지 않다.
솔직히 나도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런 아이들은 밉상으로 보인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나도 많이 깨달은 바. 민서 차례가 와서 그네를 타면,
1분 이내로 태우고 "이제 뒤에서 동생이 기다리니까 민서는 양보할 시간이다~"라고 얘기한다.
아직까지는 민서도 기꺼이 "응~ 그만 탈래요~"라고 얘기해 준다.

난, 솔직히 말해서, 내 딸들이 밖에서 다른 어른들한테 사랑받았으면 좋겠거든. 난 속물이거든.
그러니까 작은 부분에서도 가정교육을 잘 시킬테다. 쿨럭...


***
요즘은 밤에 놀이터 오는 가족들이 많다.
남편이 야근할 때, 나도 아이 둘을 데리고 놀이터에 많이 나간다. 위에도 썼지만 그게 더 편해서.

자기랑 비슷한 또래의 아이와 마음이 맞아서 "우리 같이 시소 타러 가자~"라고 신나서 달려가는 민서를 제치고...
6살쯤 되는 커다란 아이가 새치기를 하고 시소에 앉았다.
민서가 낙심한 얼굴이었고, 나는 그 아이한테 약간의 잔소리를 했다. "동생이 먼저 탈 차례인데 언니가 이렇게 가로채면 동생이 슬프잖아."

위에도 말했지만, 그런 아이의 인상은 밉상이다. -_- 심술궂다고 얼굴에 씌여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 아이가 내리더니, 반대편에 앉은(즉, 민서랑 같이 놀자고 달려왔던) 아이한테 가서 그 아이의 머리를 우악스럽고 세게 밀쳤다.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어머! 너 동생한테 그러면 안 되지!! 이 아이 엄마 누구세요? 제 딸은 아니지만 다른 여자애 머리를 심하게 밀치네요!!!"

저 멀리서 공을 주고받던 부부 중 여자분이 대꾸했다. 말투도 시덥잖은 일이라는 듯 하다..."괜찮아요~"

허걱....난 정말 충격이었다. 저렇게 세게 폭력을 쓰는데도 괜찮다니....역시 부모 따라 아이가 행동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 아이한테서 민서를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움직이던 중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머리를 밀친 아이와 밀쳐진 아이가 자매였던 것이다. -.-
그러니까 그 아이 엄마가 태연하게 "괜찮아요~"라고 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나도 이제 입장 바꿔 생각할 자격이 된다고 스스로 판단컨대....
만약에 6살이 된 민서가 윤서 머리를 저렇게 밀면...난 가만 안 둘 것 같다.
지금 실수로 건드려도 단호하게 혼내는 판국인데, 6살에 그런다면....눈물 쏙 빠지게 혼나 마땅하다.;;;
(나는 '좋게좋게 말하는' 대화로 훈육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구분할 생각이다. 특히 폭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훈육이야 각자 가치관의 문제이고, 내가 지극히 일부의 한가지 사례만 봤을 뿐이기에, 그 부부에 대해서 왈가왈부 평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제3자인 내가 그 부부의 6살쯤 된 큰 딸의 무자비한 폭력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시선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솔직하게 밝힌다.

나 역시, 나의 지극히 일부분만 보게 되는 남들한테 각종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오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난 민서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다가 징징거리고, 좋은 대화도 세 번 연거푸 안 통할 때면, 애가 울던 말던 뒤도 안 돌아보고 내 갈길을 간다. -_- 남들이 보고 저 엄마 이상하다고 뭐라고 했을 장면들을 많이 연출했지.)

하지만 적어도, 내 딸들이 남들한테 '쟤는 가정교육을 잘 못 받았나보다'라는 오해(이건 진실이건)를 받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선 쉬지 않는 열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놀이터에서, 아이도 자라지만, 나도 자란다.


Lin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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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걸 | 2009/06/30 18:00 | 가족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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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국땡이 at 2009/06/30 19:40
우리딸도 집에있는 미끄럼틀 꼭 역주행 하더니 동네가서도 그러네요,,
언니 오빠들이라면 안내려오고 기다려주는데,,
나중에 다칠까봐 걱정이에요,,,,

크게 흉나지않고 어서 낫기를....

우리애가 맞아도 참을수 있다는건 완전 오산이란걸,,
작년 겨울 뺨한대 맞고 우는 우리딸을 보니까 알겟더라구요,,
그래도 때린애가 또래 어린애라서 놔뒀지.,.
(그엄마는 그냥 가만히 있어서 엄마들 사이에서 영원한 왕따가 되었답니다...
큰애라면 조용히 데리고 가서,,,,ㅋㅋㅋㅋ

에휴,, 남한테 피해주지않는 문화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열불나고,,,
게다가 자기자식이 잘못하면 걍 냅두는 엄마들도 너무 밉고요,,ㅠㅠ
하지만 세상은 그런사람과도 '함께' 해야함이 너무 열받는거요,,ㅠㅠ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01 18:19
세상은...그런 사람과도 함께 해야 하죠...정말...ㅜㅜ
Commented at 2009/06/30 20: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01 18:20
이곳도 고등학생이 미끄럼틀 막고 있을 때가 종종 있어요. -_- 뭐라고 말도 못하고 그냥 피하죠..;;저도 고등학생이 무섭...;;
Commented by Frye at 2009/07/01 01:37
니가 잘 했다. 나도 나가면 항상 조심시키기는 하는데..
참 이상한 엄마들 많드라... ㅠㅠ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01 18:21
사실 이상한 엄마가 되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죠.
Commented by 어리둥 at 2009/07/01 01:40
아이니까 너그러이 봐주라고 말하면서
아이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01 18:22
그러게요. 바로 잡아주는 것이 인격체로 존중하는 방법일텐데 말이지요.
Commented by nadia at 2009/07/01 09:41
시골오니 좋은게 , 여기 애들 확실히 순해요 엄마들도 그렇고.
서울서는 많이 치이고 다녔는데 말이죠...여기선 어딜 내놔도 마음이 편해요.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01 18:24
제가 사는 곳도 도시인지라...ㅜㅜ
Commented at 2009/07/02 15: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02 16:08
오우 정말 그렇군요. ㅜㅜ 너무 절묘해요. 순박하지도 영악하지도 못한 대가!!
Commented by 이정아 at 2009/07/03 01:13
우리 희상이도 딱 민서만할때 하루 웬종일 동네 아이들하고 놀이터에서 뛰어다닌던 때가 있었지..
그때 희상이 세상 무서운 것도 없고 완전 지 세상이었는데...
요즘은 쪼매 불쌍혀. 그렇게 신나게 못놀아줘서..
자전거도 글케 좋아하는데 자주 못태워주고...

여튼...나도 놀터에서 황당한 경험을 많이 당해봐서..
어떤 트러블이던...우리 애가 잘못했던 그 쪽 애가 잘못했던.. 일단은 사과하고 보는 성격인데..
그쪽에서 완전 생까면 진짜 황당..
꼭 그런 엄마밑에 애들도 밉상이더라고..

민서 흉터 안지게 연고 열심히 발라죠.. 빨리 나아라~~!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03 11:40
그렇지...ㅜㅜ 상처는 타박상이라 흉터는 없을 거야. ^^ 멍만 들고 부었거든..
Commented by 랑랑 at 2009/07/10 11:04
아, 마지막 줄 완전 감동이에요! 아이도, 언니도, 그리고 글을 읽는 저도 자랍니다 ^-^
언니 완전 최고!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9/07/10 13:06
어머 민망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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